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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주부 마을의 유래

이 마을은 작자와 연대를 알 수 없는 조선후기 판소리 계열의 동물을 의인화한 우화소설의 하나인“ 별주 부전마을 ”로 자라가 용왕의 명을 받고 토끼의 생간을 구하기 위해 처음으로 육지에 올라온 『용새골』을 비롯하여 유혹에 넘어간 토끼가 자라의 등에 업혀 수궁으로 들어간 후 위기를 모면하기 위 하여 간을 떼어 청산녹수 맑은 샘에 씻어 감추어 놓고 왔다는『묘샘』구사일생으로 육지에 돌아온 토끼가 간을 떼어 놓고 다니는 짐승이 어디 있느냐며 자라를 놀려댄 후 사라진『노루 미재』, 죽어있던 자라가 바위로 변한『자라바위(덕바위)』와 수궁 앞에 위치한『궁앞』과 안궁』등이“별주부전마을”임을 한층 더 입증하고 있다.

독살 이란?

조수간만의 차를 이용해 물고기를 잡는 일종의 돌 그물 같은 의미다.
학계에서는 이를 석방렴(石防簾)이라고 부르는데 그 음(音)을 따서 "독살", "독발", "돌발" 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독살은 "밀물 때 물의 흐름을 따라 들어온 물고기가 물이 빠지는 썰물 때 그 안에 갇혀 나가지 못하게 되는 원리를 이용한 어로법이다.”인간이 원하는만큼 잡는 고기잡이와 자연이 주는 대로 받는 고기잡이, 이렇게 고기잡이를 두 부류로 나눈다면 독살은 후자에 속하는 자연의 이치에 따른 어로법이다.
어살에 대한 기록중 가장 오랜 된 것은 고려 인종23년(1145년)에 펴낸 (삼국사기) 까지 거슬러 올라 "중국 수나라 양제의 제2차 고구려 원정에 관한 기록 중 어량(魚梁)이라는 말이 등장한다" 고 학자들이 밝히고 있으나, 그 형태로 보아 이미 원시시대에 등장한 어법일 것이라고 짐작한다.
이후 (고려사) 에도 1016년에 현종이 왕자에게 내린 하사품중, 금,은,비단이며 토지와 염전 등과 함께 이 "어살"이 오르기도 했다. 독살은 한번 쌓기만 하면 반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큰 경제적 가치가 있다. 그러므로 많은 인력과 돈을 투자해서라도 독살을 소유하기을 원했고 이로 인해 자연적 여건이 잘 갗추어진 서해안 지방에는 많은 독살이 쌓여지게 되었다. 15세기에 펴낸 (세종실록지리지) 에 따르면 황해도 127개, 충청도에 136개, 전라도에 50개, 경기도에 34개 경상도에 7개, 함경도에 2개의 어살이 설치돼 있었다. 특히 황해도 강령만과 해주만, 충청도의 천수만, 경기도의 경기만과 남양만 등 서해안 일대에서 발달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서해안은 수심이 얕고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독살을 설치 하기가 수월한데다 물고기의 산란장 역할을 하는 개펄이 넓게 형성돼 있기 때문이었다. 또한 최대의 시장인 한양이 가까이 위치해 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무려 1000년이 넘도록 어이온 어로 수단이던 독살이 쇠락하기 시작한 것은 조선 말기부터다.
대형 어선에 의한 그물 어업이 발달하고 외국의 각종 어로 장비와 어법(漁法)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제 때까지만 해도 서해안을 중심으로 여전히 많은 독살이 설치돼 있었다.
이렇게 옛 기록에서나 듣던 독살이 지금까지 잘 보존되어 조업이 이루어지고 있다면 얼마나 신비스런 일일까?

현재에도 태안군 일대엔 수많은 독살이 남아 있는데, 특히 안면도의 밧개, 근흥면의 마도, 소원면의 개목, 원북면의 안뫼, 이원면 의 사목 등은 지금까지 형태가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많은 사람들에 의아심을 자아낸다. 하지만 날마다 독살을 살펴 보는 주인이 없어 그저 허전함을 느낄 뿐이다.
유일하게 남면 몽산리 굴혈독살만이 3대째 그 어로법이이어지고 있으니 그 분이 바로 김의배(74세) 씨다. 김옹의 독살은 길이가 약 150m에 최고 높이 가 1.5m 가량 되는데, 지름이 30∼70cm쯤 되도록 돌멩이를 쌓아서‘호반’형태의 돌담 을 둘러 놓았다. 그리고 독살에 든 물이 빠 져나가는 길목에는 어린아이 몸통만한 구멍 을 내고, 그 앞에는 고기들이 빠져나가 지 못 하도록 대발(竹簾)을 쳐놓았다. 밀물을 따라 독살 안에 들어왔던 물고기들이 썰물 때에 이 구멍 앞에 모여들면 손쉽게 뜰채로 떠서 대바구니에 담기만 하면 된다. 대체로 날씨가 흐리고 바람이 불며 흙탕물이 밀려드는 날에 고기가 많이 든다. 그리고 옛날에는 조기가 가장 많이 잡혔지만, 요즘에는 우럭, 놀래미, 전어, 숭어, 고등어, 멸치, 낙지, 주꾸미, 새우 등이 뒤섞여 들어온다. “아마 내가 스물 몇 살쯤 됐을 때였지. 하루는 혼자서 다 퍼내지도 못할 만큼 멸치가 많이 들었던 거라. 그래서 동네 사람들을 죄 불러다가 재주껏 퍼담아 가라고 했지 그 뒤 에도 몇 섬(石)씩 들었던 일은 흔했지만 근래에는 별로 안 잡혀. 고기들도 씨가 말랐고 저 앞에 쳐 놓은 그물 때문에 당최 여기까지 들어오질 못해”
김씨의 말로는“독살 안쪽의 물이 깊어 야 썰물이 지기 시작해도 고기들이 빠져나가지 않고 독살 안에서 안심하며 논다”는 것이다. 원래 독살은 해마다 한두번은 품을 사서 허물어진 돌을 다시 쌓아올리거나 독살 바닥에 쌓인 개펄을 퍼내야 한다. 그 작업에는 주로 마을 사람들이 동원됐는데, 품삯을 주지 않는 대신 독살에 든 고기를 나눠 먹었다. 평소에 독살 주인으로부터 찬거리를 얻 곤 하던 이웃들이라, 독살을 정비하는 일에는 기꺼이 힘을 보탠다. 그러나 일손이 귀한 요즘에는 중장비를 빌릴 수밖에 없는데, 고기도 별로 들지 않는 독살에 큰 돈을 들이기가 썩 내키지 않는 듯했다.
독살의 주인은 날마다 달라지는 조수간만의 차이를 정확히 헤아려서 독살을 보러 가야 한다. 물때를 잘못 짚거나 농사일에 쫓겨서 조금 늦게 가면 이미 다른 사람의 손을 타는 경우도 종종 있기 때문이다. 김씨도 낮물때 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독살 보는 일을 거 르지 않는다. 고기가 많이 들지는 않지만“돈 들이지 않고도 비린 것을 먹을 수 있고, 그 일마저 그만두면 소일거리가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독살을 보는 일은 언제부턴가 김씨에 게 가장 큰 즐거움이 됐다. 오늘은 얼마나 들었을지 생각하면 독살로 향하는 발걸음이 절로 가벼워진다. 설령 텅빈 대바구니만 달 랑 메고 집으로 돌아오더라도 마음과 발길은 가뿐하다. “다음에는 더 많이 들겄지”하는 생각 때문이란다.

독살하는 사람들

안 내 / 태안군청 041-670-2544 | 남면 041-670-2614 | 이원 041-670-2618